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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Gil Lee

2024 인생말씀 #100 - "요한복음 1:1 & 창세기 1:1"

<오늘의 말씀> "새구두"


‘새구두’를 사서 첫 하루를 신고 다니면 발 뒤꿈치에 물집이 잡혀서 한동안 아픔을 참으며 걸어다닙니다. 그러다 물집이 터지면 밴드를 단단히 붙이고 다녀야 그나마 덜 아픕니다. 한동안 그렇게 다니다보면 새구두가 익숙해져 뛰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이렇게 발에 익숙해지면 구두를 살 때 보았던 디자인도 다시 더 이쁘게 보입니다. 구두를 신은 내 모습도 이뻐보입니다. 구두랑 잘 어울리는 옷을 입으면 구두를 정말 잘 샀다는 생각으로 뿌듯해집니다. 그제서야 진짜 내구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생말씀’이란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묵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매일 매일 새로운 하루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루를 주신 하나님의 메세지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도 매일묵상이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삶들이 있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한 번 드리는 것으로 그리스인의 의무를 다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열심히 봉사함으로 그리스도의 삶임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만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삶의 표증을 삼는 사람들도 있고, 비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만남을 그리스도인의 표증으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창1:1) 이전에 하나님은 말씀이셨고 하나님은 말씀과 함께 계셨습니다(요1:1). 사람도 무엇을 하기 전에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말씀과 함께 있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말씀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후에 어떤 행동을 해도 그 행동에 바른 의미가 담기기 때문입니다.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묵상을 소중히 여기는 삶’이 ‘새구두’처럼 어색하고 아프고 불편한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증을 말씀묵상이외에 다른 것들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없이도 신앙생활(?) 교회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매일묵상’이 ‘새구두’처럼 불편하여도, 이제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이 하루를 주신 하나님의 메세지를 반드시 찾아 하나님의 자녀다운 마음과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


<오늘의 기도>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새구두처럼 여겨질찌라도 매일 매일 익숙해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이 내 발에 맞는 구두가 될 때까지 신실하게 걸어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찬양>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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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인생말씀 #100 - 시편 62:9


“ 허무 대신 감격“


<오늘의 말씀>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시편‬ ‭62‬:‭9‬ ‭KRV‬‬


<오늘의 묵상>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치 없는 것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도 참 믿을 수 없는 존재이며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선 정말 입김 보다도 가벼운 것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우리가 착각으로 내 스스로 나의 가치를 높게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여겼던 마음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한다 .

어떻게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 주시고 십자가를 대신 지게하셨나 생각하니 가히 충격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에 놀라게 된다 .

오늘 말씀은 인생이 허무함이 묵상 되는 것이 아니라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묵상하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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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park52
09 abr

#100 인생말씀 (4/9/2024)


제목 ; 거룩한 씨


말씀 ; 이사야서 6장 9 - 12절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 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 한다’고 일러라.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

그 때에 내가 여쭈었다. “주님! 언제까지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어질 때까지, 사람이 없어서 집마다 빈 집이 될 때까지, 나 주가 사람들을 먼 나라로 흩어서 이 곳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그렇게 하겠다”


묵상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고난을 주기로 계획을 세우셨다.

그러면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의 앞날을 예언하게 하심은 무슨 의도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난을 계획하셨지만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참에 그들을 바로 잡아 주시기로 결심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어중쭝하게 깨달아 다시 또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게 되기를 원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더욱 굳게 하였다.

완전히 다 부숴지고 무너지고 황폐하여 질 때 까지 그렇게 하시기로 계획하셨다고 이사야에게 말씀하신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진 뒤에 하나님께서는 새로이 그들을 불러 모아 새롭게 시작하려 하신다고 이 글을 읽는 우리들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백성들은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 하고 그런 예언을 하는 이사야를 

죽이기까지 하였다. 

요즘 세상은 이스라엘 시대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하나님의 이 세대에 대한 계획은 무엇일까?

우리는 옛적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고난이 온다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을 정도로 세상은 악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 손으로 황폐하게 만들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인 것도 알 수 있다.

혹 하나님께서 예전과 같이 모두 황폐하게 될 때까지 우리를 버려두신다해도, 

우리가 그 뜻을 따라 고난에 참여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13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 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세상이 그렇게 황폐하여 버려져도 그 속에 거룩한 씨가 남아서 그루터기가 되어 다시 새 나라를 세우도록 하실 계획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는 것이라고 받아 들여진다.


사랑의 주님, 이 세상이 모두 황폐하여지고 주님의 은혜조차도 구할 수 없는 그 암흑의 때가 다 지나고 나면, 

새롭게 주님의 나라를 세울 때에 거룩한 씨로, 그루터기로 남아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잠잠하게 하시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영으로 채우셔서 거룩한 씨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고난 속에서도 늘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드리며 새로운 모습으로 새 날을 맞이하는 기쁨을 기대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세상을 꽉 채울 그 날에 주님의 얼굴을 뵙기 원하며 그 사랑에 감사하여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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