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권위"
<오늘의 말씀 >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찌로다 하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 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이르되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열왕기상 21:3-4, 7 KRV
<오늘의 묵상>
내가 다 가질수 있는 왕인지
하나님이 세워주신 리더 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모든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
가정에서도 내가 부모의 권위를 이용하여 자기 중심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다면 이 아합이나 이세젤과 같이 미성숙한 결정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가정의 질서와 평화를 깨는 일이 될것같다 .
하나님께서 높은 자리의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먼저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오늘의 기도>
부모도 기업 리더도 정치인이나 대통령의 권위도 교회 직분자의 모든 권위도 하나님 주신 것으로 아는 겸손한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섬기고 사랑하기를 먼저라는 리더가 되어 결국 하나님에의해 높임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찬양>
#105 아모스 2장 6~7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서너 가지 죄에 대하여. 내가 그들을 용서 하지 않고 벌을 내리고야 말겠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의로운 자를 죄인으로 만들고.
신발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사람들을 팔아버렸다.
그들은 힘없는 자들의 머리를 짓밟아 흑 속에 처박고 연약한 사람들에 살아 갈 길을 막아버린다. 또 아비와 아들이 같은 창녀에게 드나들으로써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묵상: 아모스 선지자는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서너 가지 죄 곧 많은 죄악을 지적하고 있다.
옛 과거나 지금의 세상이 달랐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지금 이세상도 옛 조상들과 똑 같은 죄을 짓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살면서 타락한 세상을 탓하면서 또 어쩔때는 남을 아프게 하면서 까지 최고가 되려고 한다.
우리가 비록 지금은 힘이들지라도 믿는 자답게 경건하게 신앙인 답게…
#91- 하박국 2장 13-14절
12.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3.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마암음이 아니냐
14.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묵상: 하박국 1장 에서는 일어나는 일들에
침묵하시는 하나님, 답답함을 토로한다. 지금 이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박국에게 어떻게 할지를 말씀하신다. 우리의 답답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를 때 , 왜 모른척하고 계시지! 라고
생각하지만, 일 하고계심을 믿을때 담대하고, 기다리고 있을수 있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는 입김 한번 낼수 없는 돌을 보고 숭배 하는 우리들, 보이지 않는 땅을보고, 노력하고 사는거 하지말라고 하신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는데 '너 행복하니' 물이 바다를 덮을 수 있을까를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승리하는 삶은 하나님…
#154 인생말씀 (6/1/2024)
제목 ; 냉정하게 자를 줄 아는 슬기
말씀 ; 마태복음 25장 9절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이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나 너희에게나 다 모자랄 터이니, 안된다.
차라리 기름장수들에게 가서 사서 써라.’
묵상 ;
이 이야기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기 위하여 준비가 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대한 예로 많이 들려지는 예화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았다.
비행기를 타고 처음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생각한 적이 있다.
응급시에 옆에 어린 아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옆에 있으면, 자기 마스크부터 챙겨 쓰고 난 후에 그들을
도와주라는 안내말이 나에게는 참 냉정하고 이기적이라고 느껴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내가 먼저 안전해져야지 그들도 바르고 안전하게 도와줄 수가 있겠구나 생각되었다.
이 슬기로운 처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자기가 신랑집에 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게 자를 수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이해가 간다.
개인적인 일에서도 자기의 것도 못 챙기면서 남의 것을 챙기느라 힘이 들어하는 것을 보면, 챙겨주려 애쓰는 사람도, 챙김을 받는 사람도,그것을 보는 사람도 모두 괴로움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칫하면 자기것도 챙기고, 또 그 두 사람도 다 챙겨주어야하는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모든 면에서 넉넉하여 남을 챙겨주기로 한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그렇지 않고 인정에
이끌리어 미처 자신을 돌보지 못 한 채로 남을 챙기는 사람도, 그것을 받는 사람도, 모두 힘이 들게 되는 것을 본 경험이 있다.
특히 공적인 일을 할 때나, 믿음에 관계되는 일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자르는 일을 잘 하여야한다고 생각한다.
내것부터 챙기고 옆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모두를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인정이 많은, 거절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이렇게 하기가 참 힘들다.
또 이것이 사랑이라고 느끼고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사랑의 방법이
아니다. 사랑은 모두를 기쁘게 즐겁게 만드는 것이지 누구라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이 나의 믿음을 지키는 일일 때는 두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이나 사회나 교회와 같은
공동체 안에서는 더욱 냉정한 자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이 모두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게 되기 때문이다.
이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기에 기름을 나누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 그렇게 했기 때문에 열처녀가 아니라 다섯 처녀가 잔치에 들어가지 못 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공의의 재판관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가 인정에 흔들리어 우리의 믿음을 훼손시키는 일이 없도록 바른 결정을 내리라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런 세상의 것에 연연하여 믿음을 잃고, 주님이 하시는 일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슬기를 주시옵소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하시고, 그렇게 사랑하며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베푸신 천국잔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잘 지키는 용기를 주시옵소서.
신랑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