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유산“
<오늘의 말씀>
“그리고 그는 여호와께서 경배를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신 성전에 이방 신의 단들을 쌓고 성전의 두 뜰에 하늘의 별들을 숭배하는 단들을 쌓았으며 자기 아들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이방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는 또 마술을 행하고 점쟁이와 무당과 영매를 찾아다녔으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많은 악을 행하여 그를 노하게 하였다.”
열왕기하 21:4-6 KLB
<오늘의 묵상>
므낫세라는 이름의 뜻은 “잊어버림”이라
한다.
정말 므낫세는 아버지때 보았던 하나님을 싹 잊어버린 듯이 악한 행실만 골라골라 한 왕이었다 .
아버지가 사는 삶을 보았을텐데 어찌 이렇게
무섭도록 하나님을 대적하여 살았을까
의문이 생긴다 .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어머니 헵시바의 영향이였거나 아버지 히스기야가 자녀의 신앙교육에 무관심 했거나 자녀와의 관계가 부정적이었나 하는 것들이다 .
성경에 다 나와 있진 않아 다 제대로 알수 없기에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
아이들의 엄마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으니 일단 패스!
그다음 아이들의 아빠의 신앙교육. 음 남편은 나를 따라주지만 신앙이나 교육엔 관심이 없으니 기도해야할 부분 체크!
그다음 자녀와 관계 ?
사춘기인 이삭이와 대립하기도 하고
짜증이 많은 재민이와 대치하는 상황도 슬슬 늘고 있다 . 매일 기도하며 지혜롭게 행동해야 하는 부분이다 !
그냥 기도하고 있고 사랑만 주면 다 잘 자랄꺼라는 말도 많이 듣지만 므낫세의 완전히 하나님을 잊은 모습을 보면 더 깊이 묵상하고 삶에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 같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히스기야 왕도 완전하진 못했지만 계속 하나님을 섬기고 간절히 구하는 신앙을 가졌었는데 그 아들 므낫세는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싫어하시는 것만 골라서 하는 악한 왕으로 자랐습니다.
저의 삶가운데 아이들에게 다른 믿음의 유산을 물려 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밝혀 보여 주셔서 회복케 하시고 아이들의 바른 신앙을 교육하며 아이들과 바른 관계로 은혜의 통로된 부모로 잘 사용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찬양>
#128 민수기 7장 89
모세가 주와 말씀을 나누기 위해 만남의 장막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법궤 뚜껑인 소죄판 위에 있는 두 천사 사이에서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는 말씀이 들려오곤 했다.
묵상: 모세는 하나님과 만남에 장소에서 대화을 한다고 했다.
나는 늘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 통행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첫 번째 단계는 마치 가까운 사이에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라 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 하시며.
또한 다른 많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고.
그리고 주님을 기다리는 것에 인내심을 키워야 한다.
주님을 기다리며 함께 하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갖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기도할 때 나는 하나님께 말하는 시간도 좋치만.
침묵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허지만 나는 무엇이 급하고 조급한지 내말만…
#118- 사사기 21장 25절
25. 그 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었으므로 ,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
묵상: 나 어렸을때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저 애비 없는 자식" 우리들이 자기 멋대로, 고민하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아이들을 놓고 하는 말이었다. 지금 많은 나라들의 왕, 혹은 지도자들이 있지만, 자기들의 욕심에, 욕망에 세계가 힘들어 하고있다. 우리들이 성령님의 뜻을 들으려 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살고 있다면 내가 두손 모으고 눈을 감고 들을 때 일것이다. 육체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를 잘 말씀 하시고 있다.(갈라디아서 5장19-23)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도 친절하게 가르쳐 주실 나의 왕 성령님의 작은소리에도 예민한 나의 반응이 대답하기를 소망한다.
기도: 주님, 오늘도 육체의 행실을 따라 살지 않고,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선함, 신실한 마음이 전달되기를 소망합니다.
#223 인생말씀 (8/9/2024)
제목 ; 거지가 아닌 자녀로 불러 주신 하나님의 은혜
말씀 ;로마서 11장 35 - 36절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묵상 ;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느냐고 묻는다.
내가 주님께 무엇을 드렸을까 ? 생각해 보았다. 내가 태어날 때 나는 아무것도 없이 태어났다.
흔히 하는 말 처럼 ‘공수래 공수거’… 이것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누구에게 무엇을 주기를 아깝게 여기는 때가 있다.
사람들은 나의 수고와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것이 내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나도 어느정도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중 하나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 한다.
오늘 만물이 하나님께서 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있고, 하나님을 위하여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런 하나님께로 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댓가 없이, 그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만 영생까지 받기로 되어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매일 이것 주세요, 저것 주세요, 졸라댄다.
이 말씀대로 우리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는 것일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믿고 따르면서 달라고 조르고, 주시는 것에 감사하며 산다면 그런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믿고 따르기만 한다면 영생까지 준다고 하셨는데 무엇인들 주지 못 할까?
오로지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욕심 부리지 말고 겸손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며,
우리들의 사는 모습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준 것 없이 받는 사람을 거지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거지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지라 부르지 않으시고 자녀라 불러 주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의 이 크신 사랑과 자비하심에 감사한 마음이면 우리는 절대로 교만해 질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만이라는 놈이 고개를 들라치면
어느새 내게 닥아와 나를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또한 감사드린다.
주님, 우리를 거지라 부르지 않으시고 자녀라 불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만든 것 아무것도 없으면서 뭐 맡겨 놓은 것처럼 주님께 달라고 조르기만 하는 우리를 어여쁘게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그 크신 은헤에 또 감사드립니다.
감사하는 마음 앞에서는 결코 미움도 교만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론적으로 깨우친 진리이지만, 우리가 이것을 지키며 살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랑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의 영광이 영원하시기를 바라며
우리를 위하여는 무엇도 아끼지 않는 자비와 사랑의 주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