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가복음 1:35)
안타까운 선입견
‘새벽’하면 한국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새벽기도’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어떤 때에는 ‘도대체 누가 새벽기도를 만든거야?’라는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새벽이 좋기도 하지만 때론 부담도 되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왠지 이런 선입견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새벽: 거룩한 고독의 시간
예수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신 그 ‘새벽’은 바로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고독’의 시간이었다. 하나님과 대면하여 만나는 이 시간은 예수님의 삶의 모든 힘이 공급되는 시간이었고, 영혼을 조율하는 시간이었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득채우는 시간이었다.
새벽
오늘은 ‘새벽’이라는 시간을 '물리적인 이른 아침의 시간’이라는 선입견을 뛰어넘어 '내 주변에 대한 시선과 모든 마음을 차단하여 하나님께로 집중하여 대면하는 시간’이라고 재정의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런 선입견때문에 하나님과의 대면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놓치는 것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마치 새벽이 아니면 주님을 만날 수 없는 것 같은 선입견까지 가득했던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늘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 할 일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힘써야 할 활동도 많다. 우리는 빈틈없이 바쁜 삶을 원한다. 바쁘게 살면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느낀다. 몸이 바쁘지 않으면 생각이라도 바쁘게 움직인다” - 헨리나우웬, ‘삶의 영성’ -
우리에게 필요한 새벽
오늘 이 ‘새벽'은 우리 안에 가득차 있는 것들을 걷어내어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시간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반응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독의 시간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한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단 둘이 대면하는 이 ‘고독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33:11)
<오늘의 기도>
나를 매일 만나길 원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과의 대면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새벽'에 대한 선입견때문에 하나님과의 대면하여 교제하는 시간을 놓치는 이들에게 새로운 영을 부어주셔서 주님과 매일 매일 새로운 만남을 경험하며 새로운 은혜와 새로운 영을 맛보아 즐기며 살아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의 찬양> "온 맘 다해"
#78 예례미야 18장 6절
여호와의 말이다. 이스라엘의 집아 내가 너희에게 이 토기장이처럼 하지 못하겠느냐? 보아라 이스라엘의 집아. 진흙이 토기장이 손에 있는 것처럼 너희도 내 손안에 있다.
묵상:하나님께서 예례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례미야는 즉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 가서보니. 토기장이가 만들고 있던 그릇이 망가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토기장이는 자기가 보기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으로 만들어습니다.
토기장이는 진흙 한덩어리로 귀한 그릇을 만들고 또 한덩어리로 천한 그릇을 만들 권한은 토기장이에게 있다고하셨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의 대한 비유로. 이스라엘의 징벌과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례야에게.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지금 하나님이 화가 많이 나셔으니 어서 빨리 깨달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을 찿으라고 경고 합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듯.
우리들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을…
#78 김진선
성전앞에 장로부터
“늙은 사람, 젊은 사람, 처녀, 어린 아이, 부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되 이마에 표를 가진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아라. 너희는 이 일을 내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 그러자 그들은 성전 앞에 있는 장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에스겔 9:6
에스겔에게 보이신 환상중에 우상숭배한 이스라엘을 벌하시는데 먼저 하나님의 성소에서 부터 성전앞에 있는 장로부터 죽이기 시작했다하신다 .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성소에서부터 우상숭배 한 자들을 처벌하시는데 장로부터 죽였다는 것을 보니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성도이니 우린 괜찮다가 아니라 우리안에도 아님 세상사람보다 더 우상숭배 빠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
헛된 낙관주의에 빠지지 말고 두려운 마음으로 내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지 철저히 살펴야 겠다 .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우리에게 더 큰 책임을 물으시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하나님 하나님의 성소 부터…
#78 인생말씀 (3/18/2024)
제목 ;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말씀 ; 시편 40편 7,8절
그 때에 나는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나에 관하여 기록한 두루마리 책에 따라 내가 지금 왔습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주님의 법을 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묵상 ;
나에 관하여 기록한 두루마리 책이란 생명책을 말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 두루마리 책에 나에 대하여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기록에 따라 내가 지금 주님 앞에 나왔다고 말한다.
그 날, 내가 하나님을 만나던 그 날이 이미 기록이 되어있었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래 전에 내가 아직 어렸을 때에, 내가 아직 하나님을 알지도 못 할 때, 내가 도움이 필요했고,
그냥 재미로 나가던 주일학교에서 배운 찬송가를 동생과 함께 부르며 걷고 있던 우리에게 도와줄 사람이
나타났는데,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사람을 만나게 해 주셨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그날을 나는 내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날이라고 믿고 있다.
그 후로부터 미국에 올 때 까지 오랜동안 나는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또 쉬기도 하고 하였다.
하지만 어떤 서류를 작성하든지 아니면 누가 묻든지, 교회를 나가건 안 나가건 상관 없이 나의 종교는 항상
기독교였다. 아마도 나는 나도 모르는 중에 늘 주님의 법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 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 (시편 37편 23,24절) 고 말씀하셨다.
돌아보면 나는 오랜세월을 비틀 거리며 방황하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나의 손을 잡아 주시고 결국은 주님 품으로 인도하셨음을 깨닫고 감사드린다.
넘어져 바닥에서 뒹굴었어도 주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음을 상기하며 그 은혜에 감사드린다.
주님, 나의 이름을 불러 주신 나의 주님, 내가 주님의 뜻 행하기를 즐거워합니다.
은혜의 주님, 나의 이름을 주님의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여 주시고 이끌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걷는 길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 이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비틀거릴 때에도 손을 잡아 주시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으며
든든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정성 다 하여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